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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0일 (월), CGV 오리 아트하우스관, <끝없음에 관하여> 후기
영화를 좋아하는 짝꿍 덕에 올해 들어 영화를 자주 본다. 흥행작도 줄곧 놓치던 나인데, 예전 같았으면 상영하는 줄도 몰랐을 이런 예술영화를 보다니, 삶이 한층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본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다.
<끝없음에 관하여>. 유한한 것보다 영원한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싶은 내게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먼저 보았던 예고편에서 연인이 하늘 위를 떠다니는 장면을 본 터라 영화를 보기 전에는 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솔직히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영화는 사랑뿐 아니라 전쟁, 절망, 무기력함, 집착, 상실, 고통 등을 다룬 듯 했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고 보니 부정적인 소재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마저도 나의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다. 이것들은 유한할까, 아니면 무한할까? 어쨌든 옴니버스식 구성의 장면들 속에서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찾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예측하기 어려운 패턴으로 이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 그 자체가 주제일지도 모른다. 관람객 모두가 일관된 교훈이나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다양한 이야기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가치가 생산될 수 있다면 오히려 좋다. 그렇게 생산된 다양한 가치 중에 하나인,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감상은 '생김새가 다르듯 주어진 상황과 경험과 생각이 제각각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이다.
이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한 사람은 유한하지만 사람의 집합인 인류는 무한하다.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는, 역사의 반복처럼 인간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수많은 별들이 '끝없음에 관하여'라는 영화 제목을 수놓았던 오프닝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각 장면에서 떠오른 다양한 생각들이 있지만 관통하는 주제를 발견하지 못한 만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일 것이기에 굳이 기록하지는 않겠다. 각 장면은 굉장히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데 이것이 꽤 생소했다. 짧은 시간 속에 다양한 정보가 포함된 요즘 흥행하는 영상물에 몸이 적응한 탓일까. 집중력을 잃고 중간중간 졸던 내 모습에 놀랐다.
장면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BGM을 통해 각 장면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구도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었고 영상미가 훌륭했다. 아름다우면서도 낮은 채도(잿빛)의 영상, 일상적인 소재와 시대적인 소재, 평범한 연출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의 공존, "한 OO를 보았다" 반복되는 내레이션, "믿음을 잃었는데, 어떡하죠?" 반복되는 인물의 대사 가운데 계속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영화 관람 도중 내가 앉은 좌석 우측에 계셨던 분이 캔 음료를 "칙~"하고 따는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영화 특유의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 소리마저도 영화 같았다.
사실 <끝없음에 관하여>라는 제목과는 역설되게도 끝이 있는 것들, 특히 유한한 인간의 이야기를 더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없음을 말하고 싶다. 넓이와 깊이가 정해진 그릇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그 안으로 물이 차고 넘치도록 부어진다면 그 그릇이 담은 물의 양은 무한에 수렴할 것이다. 그 끊임없는 공급처로 인하여, 전쟁의 역사가 아닌 사랑의 역사가 반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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